판타지/무협 포럼
판타지, 무협 세계의 정보나 설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곳.
(사실 이 글을 인문/사회 게시판에 올리려고 했습니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판타지 계열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_-)
다음 글은, 조나단 웨스트팔 저 "철학적 명제들"이라는 책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제 어떤 것의 발생 여부나 발생 방법에 차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중요한 활동을 생각해 보자.
좋은 길은 여행에 중요하다. 좋은 길이 없을 경우에는, 여행을 할 수 없거나 훨씬 힘든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은 여행에 중요하고, 또 그것에 기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덜 명백해 보이지만 동등하게 유용한,
반대 방향의 관계가 있다. 만약 길이 여행에 기여하기 때문에 여행에 중요하다면, 마찬가지로,
여행 및 교통 제도 때문이 길이 존재한다고 해야 한다. 길은 자신의 중요함을 탑승, 더 나아가 보다 일반적으로
여행에서 얻는다. 물론 길 자체는 그것에 기여한다. '보다 작은 것', 즉 길은, '보다 큰 것', 즉 수송이나 이동에
기여하고 자신의 중요성을 이런 방식으로 얻지만, '보다 큰 것', 즉 여행은 '보다 작은 것'에 기여하기도 하며,
작은 것에서 중요성을 얻기도 하고, 또한 그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
판타지를 소재로 하고 있는 몇몇 소설들에서는, 개별자(주로 인간)과 보편자(천사, 운명, 혹은 강대한 마법적 존재 및 현상)간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물론, 이 점에 관해서는 각 작가마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조나단 웨스트팔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서로에게서 발견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사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적지 않은 판타지 작품들은, 이른바 '도구적 세계관'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자신의 그 어떤 목적을 당설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스토리 구조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지 혹은 그른지 판단하는 행위는, 사실상 작품을 쓰는 개인의 몫입니다만,
그런 구조를 지니고 있는 내용은, 저로 하여금 약간의 우울감에 빠져들게 합니다.
어쩌면 제가 아직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벌이는 자질구레한 일들(방바닥을 청소하거나, 팥빙수를 먹는 일 등등)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으며,
이 세계 전체, 혹은 저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초월적인 존재들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깊은 고독감과 소통의 단절이 만연한 판타지 세계상(?)에서 약간의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뭐, 적어도 저 자신에게는 말이지요.
처음에는 판타지 작품에 관해서 쓰려고 했는데, 갈수록 철학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군요.
허접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_ _) 꾸벅...
서구의 합리적 이기주의에서 남을 이용하는 것 그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원리이기도 하죠. 빵장수가 빵을 아침에 나와서 굽는 이유는 그 빵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먹기 살기 위함이며 아침에 그 빵을 먹는 또 다른 구매자는 빵장수를 위해 빵을 사는게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빵을 사는 것이죠.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이용 한다 일 뿐이죠. 이 관계로만 놓고 본다면
여기는 윤리적 개입이 들어설 여지가 없죠. 그들은 그냥 자신의 합리성에 맞춰서 최적의 행동을 선택할뿐입죠.
위 생각에는 좀 위험한 함정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대충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판타지도 현실을 넣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기에, 그리고 이종족이 나오고 계급간의 격차(민간인과 마법사, 성직자)가 거대하기에 단절이 더욱 강화되고 소통의 부재가 더욱 활기를 얻습니다.
게다가 팔리기 위해서는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가치관에 어느정도 호응할 필요가 있기에 현대의 가치관인 도구적 세계관은 판타지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간 빗나간 예입니다만, 용병이 싸우기 직전에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자신의 칼을 갈고있는 게 독자에겐 그럴듯해보이죠. 보통 중세가 배경이고 성직자가 신의 힘을 쓰는 세상이면 신에게 기도하는게 소설의 시대상 당연한데도 말이죠.
이야기가 산으로 가려는 듯하니 이만 줄이겟습니다.
※ 때로는 슈퍼맨처럼 인류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초월자도 있지요. 반대로 지구인은 슈퍼맨에게서 별다른 가치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거야 초월자인 슈퍼맨이 작품의 주인공이니 갈등을 집어넣기 위해 당연한 연출이지만)
다른 축으로 결혼과 장례 등 개인적 서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독교 철학이 버티고 있으며
도시축제나 포도재배 등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갖가지 행사와 오랜 전통들이 존재하죠.
자본주의를 처음 유럽이외에 타지역들에서 받아들일 때 대부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려다 그 지역 고유문화와 충돌하여 오류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것은 비단 자본주의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고유의 체제 또한 마찬가지였죠.
우리는 흔히 행동과 결과의 인과 관계를 따지지요. 길과 여행의 관계도 인과 관계에서 따지면 길이라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는 목적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길이 없더라도 "여행"이라는 목적에 따라 정처 없이 걷는다면 걷는 행적 자체가 길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한마디로 "마음이 가지 않으면 몸이 갈 수 있는 길도 없다"라고 할까요?
저는 "이용"이라는 개념에는 선악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변 환경을 바꾸는 모든 행위가 "이용"이니까요.
따라서 "도구적 세계관"도 그 자체로는 선악의 개념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입장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은 나의 독립성을 해치는 악처럼 느껴지지만 그 목적이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협력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