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어깨에는 끈이 매여 있었다. 부피에 비해 월등히 큰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고장력의 검은색 고무줄이었다. 그 고무줄의 끝에는 무게추가 매달려 있었다. 60킬로그램짜리 강철 원판이 두 개, 합쳐서 120킬로그램. 그 무게가 양쪽 어깨를 뒤로, 또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깨 근육에 걸리는 압력 때문에 삼각근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정말로 찢어질 것 같았다. 삶은 닭고기를 결대로 죽 잡아당길 때의 그런 느낌처럼, 이대로 근육 조직이 찢겨나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해 온 훈련이었다. 똑같은 하중에 똑같은 동작으로 똑같이 움직이는데 여태껏 별 문제없던 몸이 갑자기 박살날 리는 없었다. 그러니 해야 했다. 들어올려라, 몸을. 너의 오기를 보여라.
그는 그렇게 허리를 굽혀 상체를 들어올렸다.
그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자꾸 어깨에서 미끌어지려는 무게추 뭉치를 양 팔을 구부려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게 자체가 미끌어질 수밖에 없는 무게이기도 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상체를 위로 들어올렸다. 각도를 바꿔 바라본다면 윗몸일으켜기와 거의 다를 게 없는 자세였다. 다만 중력에 완전히 반하는 자세라 몸무게 자체의 하중이 만만치 않았고 무게추가 더하는 하중은 그 이상이었다. 복근에서 토할듯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배의 아래쪽에서 시작하여 위쪽까지, 근육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땀방울이 튈 정도로 복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근육의 형태대로 여섯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 배의 피부가 더욱 깊은 골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의 상체는 최고점에 도달했다. 그는 그 자세로 3초간 몸을 정지시켰다. 온몸의 조직에 경련이 일었고 3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시 상체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가는 것은 천천히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지만 여기서 중력에 몸을 맡겼다가는 허리가 빠지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내려갔다.
다시 상체가 철봉 아래에 위치하게 되자 머리에 피가 쏠려 혈관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혈압을 다스렸다. 잘못 무리하면 뇌혈관이 파열되어 뇌출혈이 일어나는 수가 있었다. 겨우 상태가 진정되자 그는 한 번 더 상승을 시도했다. 운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실패지점이었다. 실패지점에서의 한 번은 평상시의 열 번보다 훨씬 힘들다. 그런 만큼 근육에는 더 큰 부하를 줄 수 있다.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그는 그렇게 되뇌이며 몸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고통스럽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훈련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차라리 엎어져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올라갔다. 자신에게도 진다면, 누구에게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신히 마지막 1회를 마쳤다. 힘이 빠진 그가 강철 원판을 떨어뜨리자 땅이 진동할 만큼 큰 소리가 났다. 그는 굴러떨어지듯 매트 바닥으로 내려와 짐승처럼 신음했다.
“크허으, 커흐……. 허윽, 크흑!”
프로스트는 배를 부여잡고 숨을 헐떡거렸다. 횡경막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어 호흡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일어났다. 그는 의자 위에 놓아두었던 피하주사기를 집어들었다. 거기에는 붉은 색의 액체가 가득찬 앰플이 꽂혀 있었다. 일곱 번째의 번아웃 앰플이었다. 이제 번아웃을 복용한 지도 일주일이 지난 것이었다. 그는 주사기를 들어 목에 가져다 댔다.
-피식
“크윽.”
붉은 액체가 순식간의 그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어지러움을 느낀 프로스트는 벽에 손을 짚었다. 처음 번아웃을 복용했을 때 느꼈던 고도의 각성감은 이미 없었다. 몸이 약물에 절어버린 까닭에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시에서 몇 번째로 큰 체육관이었고 따라서 다른 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프로스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프로스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곧 눈을 돌렸다. 질렸다기보다는 이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물론 프로스트는 그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벽에 걸어두었던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마른 수건이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젖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수건을 내려놓은 그는 1리터 들이의 물통을 단번에 비우고 다음 기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 기구는 벽에 걸려 있었는데, 강철 스프링과 손잡이, 그리고 유압식 펌프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프로스트는 그 기구의 한가운데로 다가가 벽을 등지는 방향으로 섰다. 기구는 한쪽 손에 하나씩 잡을 수 있는 형태였고, 따라서 한 쌍으로 되어 있었다. 프로스트는 펌프 위의 다이얼을 조작해 장력을 최대로 맞추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양 손에 하나씩 잡고 펀치를 치듯 번갈아 앞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최대한 힘들게 펀치를 치기 위한 훈련이었다. 스프링의 장력을 최대로 맞추었기에 펀치를 한 번 뻗을 때마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곧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곤두서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악다물고 팔을 계속 뻗었다. 며칠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프로스트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청치고는 너무 내용이 명료했다. 체육관의 사내들이 자아내는 수많은 종류의 소움 너머로, 두 사람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 크리퍼 새끼, 정말 열심히 하는 티는 다 내는구만 그래. 남의 체육관에 손님으로 온 주제에 저래도 되는 거야?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도 저렇게 지독하게는 안 하잖아. 그나저나 이제 시합 때가 다 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지? 컨디션 조절도 안 하나?
-누가 알겠어. 마스터 호엔에게 잘 보이려나 보지 뭐. 열심히 눈도장이라도 찍으면 먹고살기 편해질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원래 아무 생각이 없던가. 저런 놈들이 생각하고 인생 사는 거 봤어? 생각하고 살면 아직도 저 모양 저 꼴이겠냐 이 말이지.
-그래도 좀 이상한데. 설마 진짜로 보이카를 이기려는 거 아냐?
-하, 그 괴물을 이기겠다고? 그럼 진짜 돌은 거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뵈나? 일라운드 십초만에 게임 끝일걸.
-아무래도 그렇게 쉽게 지진 않을 것 같은데. 그 대단한 마이슨도 이겼잖아. 비록 스파링이었지만 이긴 건 이긴 거라고.
-그게 이긴 거야? 케이지 위에서 동네 건달들 식으로 개싸움을 하자고 하면 격투가가 뭘 어떻게 하겠어. 보이카는 다를 걸? 그 녀석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 녀석 앞에서 여기서처럼 반칙이나 찍찍 하다가는 뼈도 못 남기고 처맞을걸. 마스터 호엔이 노리는게 그걸지도 모르지. 거 있잖아, 개그성 시합 말야. 발은 빠르니까 꽤 오래 도망다니겠지? 그것도 꽤 재미있지 않겠어?
여기까지 들었을 때 프로스트는 연습을 그만두었다. 뻐근한 팔을 잡아내리며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십여미터 쯤 떨어진 곳, 그러니까 케이지 근처에서 두 사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로스트의 시선을 받자 한 명은 깜짝 놀라서 시선을 피했고 다른 한 명은 제법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말은 겨우 속삭임에 불과했지만 각성제에 증폭된 프로스트의 청각에는 짜증날 정도로 큰 소리로 들렸다.
그는 기구를 놓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프로스트에게 정면을 보이지 않은 채 다른 선수들을 구경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보다 덩치가 있는 사내는 표정에서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반면 작은 사내는 무척 태도가 자연스러웠다.
곧 프로스트는 그들의 바로 옆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두 사내 모두 프로스트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확하게는 듣지 못한 척을 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프로스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결국 안절부절 못하던 덩치 큰 사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했으나 곧 그는 프로스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는 프로스트의 시선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사내에게 머물러 있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곧 작은 사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작은 사내의 표정에 미묘한 짜증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프로스트는 놓치지 않았다. 딴전을 피우고 있던 사내는 프로스트에게 고개를 돌렸고 마치 그가 거기 서있는 것을 처음 안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가 의아해하는 어조로 물었다.
“아,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말이야.”
프로스트는 대답했다. 대뜸 반말을 놓는 프로스트에게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었다.
“흠. 무슨 일입니까?”
“사과해라.”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과하라고. 아까 했던 말을.”
그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넌 했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했다니까.”
사내는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를 본다는 듯한 표정을, 그러나 눈 앞에 있는 프로스트를 고려하여 아주 조금만 지어 보였다. 사실 프로스트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떠오르지를 않았다. 약 때문에 바보가 된 것인가. 목이 뻐근했고, 눈이 피곤했고, 그리고 머리가 아팠다. 어디서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머리 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사내가 말했다. 프로스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말이 떠올라 주지 않았다.
“이거 참, 곤란하군요. 가만히 있는 사람 붙잡고 왜 이러는 겁니까? 외부인이면 아무한테나 시비 걸어도 되는 겁니까? 자꾸 이러면…….”
프로스트가 계속 가만히 있자 사내는 자신감을 얻은 듯 점차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사내의 말이 길어지자 프로스트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마가 깨질듯이 아팠다. 프로스트는 짜증이 났고, 그래서 결심을 했다. 곧 프로스트는 손을 들어 이어지는 사내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싸우자.”
“뭐요?”
“나랑 싸우자.”
“……네?”
사내는 반문했다. 처음으로 사내의 표정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자신도 몰랐겠지만 그것은 도움을 청하는 몸짓이었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스파링을 하자는 얘깁니까?”
프로스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나는 싸우자고 했다.”
“어…….”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그는 겨우 한 마디를 내놓을 수 있었다.
“왜요?”
치자. 치면 돼. 말은 필요없어. 그냥 한대 치는 거야. 그 다음에는 계속 치는 거지. 언제까지?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프로스트의 머리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몹시 유혹적이었기에, 프로스트는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억누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기다려. 인간은 말을 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인간이지. 또다른 환청이 들렸다. 프로스트는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프로스트는 말했다.
“네가 마음에 안 든다.”
작은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났다. 옆에 있던 덩치 큰 사내는 얼핏 말리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프로스트의 눈빛을 보고서는 그 역시 뒤로 물러섰다. 프로스트는 그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증폭된 청각으로 일상을 보낸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습니까? 나,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대뜸 와서 하는 소리가 싸우자니…….”
프로스트는 말없이 눈두덩이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눈이 너무 피로했다. 잠을 잤어야 하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프로스트는 사내가 더욱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주먹밥을 먹고 사는 놈인데 왜 이 모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프로스트는 느릿하게 말했다.
“이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프로스트는 천천히 양 손의 장갑을 벗었다. 웨이트 트레이닝 시에 손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이었다. 프로스트는 그것을 가볍게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무척 피로한 음색이었다.
“내가 지금 그냥 널 치면, 네가 하는 말을 더 안 들어도 되는 거지?”
드디어 사내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어느새 체육관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체육관의 모든 이들 사이에 같은 종류의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긴장감의 공기였다. 체육관의 거의 모든 이들이 행동을 멈추고 이들을 주시하거나 혹은 주시하지 않는 척 하고 있었다. 작은 사내는 사방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으나 아무도 그 요청에 응답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난다긴다하는 무제한급의 떡대들조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미친개는 건드리는 사람이 무조건 손해라는 식의 마인드인 것 같았다.
프로스트는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고 사내의 얼굴을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개그성 시합이나 벌일 쓸모 없는 놈이라고 욕은 했지만 막상 싸우려고 보니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프로스트가 일단 치고 보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둘다 멈춰!”
나이든 남자의 목소리였다. 프로스트가 고개를 돌리자 문가에 서 있는 늙수그레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이 체육관의 관장이었다. 지금 막 들어오다가 눈앞의 광경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가 노기를 띈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만둬! 너희 둘, 무슨 짓이야! 체육관에서 싸우려 하다니 정신이 나간 게냐!”
“과, 관장님! 저는 억울합니다. 전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이 자식이 와서 싸움을 걸지 않겠습니까?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전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사내는 침을 튀기며 항변했다. 구세주를 만나서 적이 안심한 모양이었다. 관장은 심각한 얼굴로 프로스트를 돌아보았다.
“야딩(亞丁)의 말이 맞나?”
관장이 물었다. 아마 덩치 작은 사내의 이름이 야딩인 모양이었다. 프로스트는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구차한 소리를 늘어놓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프로스트는 대답했다.
“아마도.”
관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프로스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프로스트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이윽고 관장이 다시 물었다.
“여기는 왜 왔나.”
“…….”
눈앞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주제였다. 관장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한 프로스트는 가만히 있었다. 관장은 천천히 팔짱을 꼈다.
“시합이 내일이야. 오늘은 나오지 말고 집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말해 봐. 왜 왔나.”
“……연습이 부족한 것 같아서.”
“연습이 부족한 것 같다고.”
관장은 프로스트의 말을 되뇌었다. 프로스트는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 힘든 불편함을 느꼈다. 관장은 프로스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프로스트는 낮은 한숨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관장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안되겠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는 프로스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안되겠다. 말하는 게 낫겠어.”
“뭐를?”
“너는 이반 보이카를 이길 수 없다.”
마치 선언과도 같은 통고였다. 프로스트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관장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지금껏 자신을 도와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스트는 간신히 물었다.
“왜?”
“그 녀석은 강하다.”
단순해서 그만큼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프로스트도 할 말은 있었다.
“나도 강해졌어.”
“그 녀석은 강해져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하다.”
“…….”
프로스트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관장은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가 노력한 것은 알고 있다. 노력은 많은 걸 이루어 낼 수 있지. 하지만 도저히 노력으로 안 되는 물리적인 한계라는 것이 있는 거다. 사람이 노력해도 하늘을 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일반론, 일반론. 프로스트의 반론은 상식에 입각해 있었다. 하지만 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다른 것이었다면 프로스트는 크게 개의치 않았을 터였다. 무시나 비웃음, 심지어 경멸이라도 별 무리없이 견딜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관장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한 동정이었다.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
“넌 이길 수 없어. 아마 호엔 씨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이야기를 해 봤으니까.”
이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깊이 빠져드는 수렁이었다. 프로스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말을 하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몹시 잠겨 있었다.
“그럼 왜 나를 싸우게 한 거야?”
“모르겠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자기 선수를 백승째의 제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던가. 어쨌든 그도 너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프로스트는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잘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관장이 덧붙이는 말로 알 수 있었다.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내 체육관의 선수들도 너만큼 노력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 그래서 헛된 꿈을 꾸는 걸 보면서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네가 너 자신과 네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망가뜨리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너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라.”
“…….”
“긴 말은 하지 않겠다. 돌아가서 쉬어라.”
그는 그렇게 대화의 종결을 선언했다. 에누리는 더 붙일 곳이 없었다.
잠시 그대로 서있던 프로스트는 곧 떨어뜨렸던 트레이닝용 장갑을 주워 올렸다. 작은 사내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는데, 관장이 그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자 곧 인상을 바꾸었다. 프로스트는 천천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자신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주워올렸다. 가져온 물건이 얼마 없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프로스트는 벽에 걸어두었던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쳐 입었다. 어느새 흘렸던 땀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체육관을 나서기 직전, 프로스트는 후회할 짓을 하고 말았다. 뒤를 돌아 보았던 것이다.
프로스트가 벌여 놓았던 판 덕분에 아직도 체육관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관장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내들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의미는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을 맞받는 프로스트의 감각은 오직 한가지, 고통스러움과 쓰라림 뿐이었다.
잠시 후 고개를 돌린 프로스트는 천천히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문 밖으로 프로스트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문이 닫혔다. 체육관의 관장은 그 뒷모습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견디지 못하면 지는거야. 버텨라. 프로스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