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밀리터리, 군사 과학, 그리고 역사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게시판.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국내의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이슈 게시판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국내의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 이슈 게시판에서 이야기해 주세요.
글수 2,524
오랜만에 둘러보니, 뉴딜에 관련해서 물어보신 분이 있더군요. "뉴딜이 성공한 정책인가?" 이 질문은 7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답이 안나오는 주제입니다. 예전에 공부한 주제여서, 혹시 써둔 글이 있었나 했는데, 하나가 있더군요. 그 글을 편집하고 더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경제공황과 뉴딜에 대해서 심도있게 다루는 글입니다. 부족한게 있거나 지적할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토론도 환영합니다.
----------------------------------------------------------------------------------------------------------------------
전쟁, 경제 공황, 그리고 뉴딜
* 서론

루즈벨트 선거 운동핀. "뉴딜을 위하여" 라는 문구가 써있다.
* "우렁찬 20년대" (Roaring 20s)

"The War To End All Wars",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 1차 세계 대전 미국이 표방한 어구였습니다.
천혜의 초대형 성벽인 대서양을 둔 미 합중국은 1917년 4월 6일 의회의 선전포고 이후 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 (Entente) 으로서 참전했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엄청난 산업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 산업력은 연합군에게 승기를 잡게 해준 주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국토가 전쟁 피해를 받지 않은 채, 1차 세계대전 초반부터 연합군에게 군수 물자를 계속 팔아온 미국은 유럽 연합국으로 부터 돈을 “쓸어 담고” 있었습니다. 전시 경제의 특징인 “무한에 가까운 수요”는 미국 국내 산업의 생산력이 국내 소비력을 넘어서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침체됩니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이유 조약 체결 이후, 부풀어진 산업이 다시 국내 수요에 맞추어 지고, 전시에 특화되었던 산업 체계는 다시 새롭게 전쟁 전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탱크와 전투기를 만들 던 공장은 자동차와 민항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무전기가 만들 던 공장은 라디오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모합니다. 돌아온 병사들은 다시 노동자로 편입됩니다. 1919년 부터 1921년까지 전후침체 (post-World War I recession) 로 불리었던 약 2년 간 경기 침체를 겪은 뒤, 미국은 다시 회복합니다. “우렁찬 20년대” (Roaring 20s) 또는 광분의 시대 (Années Folles) 가 막을 열었습니다.

위대한 게츠비. 격동의 20년대를 잘 그려낸 Fitzgerald의 명작이지요.
이 격동의 1920년대는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등장 했던 무시무시했던 신기술은 새로운 상품으로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특수로 벌은 돈을 이런 “신상”에 소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와 라디오입니다. 이 둘은 전후 미국인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상품들이었습니다. 자동차는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전쟁에서만 쓰이던 라디오는 대중 매체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발달은 정유 산업이 전쟁 후에도 그 황금기를 유지하게 해준 공신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물결은 정치, 문화, 예술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1920년 미국 의회는 수정 헌법 제 19조 (the Nineteenth Amendment)를 통과시킵니다. 이게 무엇이냐고요? 바로 여성 참정권입니다. 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는 더 이상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실제 공직에는 여성은 거의 진출하지 못했지만, 법적인 권리를 받았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둡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모습. 푯말에는 "'여성 참정권을 지지할 때이다' 라고 윌슨 대통령이 말한다" 라고 써있습니다.
또, 같은 년도에 미국 의회는 - 상상 하기 어려운 - 수정 헌법 제 18조 (the Eighteenth Amendment), 금주법 (Prohibition)을 통과시킵니다. 이 금주법은 조직 범죄가 꽃 피워지게 하는 원흉이 되었고, 알 카포네의 악명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라디오의 부흥은 재즈 시대 (Jazz Age)을 열었습니다. 1922년 첫 상업 라디오 방송 KDKA가 펜실베니아의 서부 공업도시 피츠버그 (Pittsburgh)에서 문을 연 이후에, 많은 라디오 방송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여지없이 재즈를 틀었습니다. 예술에서는 Art Deco라는 벨기에에서 시작된 풍조가 유행하여, 이것을 따른 당시 세계 최고 마천루인 크라이슬러 빌딩 (Chrysler Building)이 뉴욕 맨하탄에 건축되었습니다.

미국 한 신문의 정치만평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재무성을 상징하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법무부를 상징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사나운 동물은 바로 금주법 단속. 재무성이 “너의 것일세 형제야, 그리고 얼마든지 가지시게” 라고 얘기하고 있지요. 금주법 단속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가히, 격동의 시대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위의 열거한 변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이 격동의 20년도 는, 그러나, 경제적으로 불안한 기반위에 올려져 있던 풍요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안했는가? 먼저 “왜?” 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미국 경제를 다음편에 차근차근 짚어 나가 봅시다.
----------------------------------------------------------------------------------------------------------------------
전쟁, 경제 공황, 그리고 뉴딜
* 서론
루즈벨트 선거 운동핀. "뉴딜을 위하여" 라는 문구가 써있다.
뉴딜 (New Deal), 즉 “새로운 처방” 은 1929년대에 발발한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Roosevelt, 줄여서 FDR)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가 1933년부터 실시한 일련의 정책들을 말합니다. 세계 역사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 주제는, 그 당시 정치/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중요한 일로 소개됩니다. 뉴딜은 종종 경제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단순한 경제 개혁으로 설명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경제뿐만이 아닌 정치와 사회의 개혁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친 뉴딜 정책은 70년 이상 넘은 지금에도 공부 되고있습니다. 오래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뉴딜에 대한 평가는 분분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뉴딜은 과연 성공하였나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뉴딜이 등장 한 원인, 뉴딜 정책들, 그리고 그 효과를 알아보겠습니다.
* "우렁찬 20년대" (Roaring 20s)
원인과 결과. 어떠한 사태는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뉴딜을 알려면
1929년 경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을 알아야 하고,
그 대공황을 알려면 1920년 초의 경제 상황을 우선 알 필요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 1919년 부터 1929년 까지 경제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The War To End All Wars",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 1차 세계 대전 미국이 표방한 어구였습니다.
천혜의 초대형 성벽인 대서양을 둔 미 합중국은 1917년 4월 6일 의회의 선전포고 이후 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 (Entente) 으로서 참전했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엄청난 산업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 산업력은 연합군에게 승기를 잡게 해준 주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국토가 전쟁 피해를 받지 않은 채, 1차 세계대전 초반부터 연합군에게 군수 물자를 계속 팔아온 미국은 유럽 연합국으로 부터 돈을 “쓸어 담고” 있었습니다. 전시 경제의 특징인 “무한에 가까운 수요”는 미국 국내 산업의 생산력이 국내 소비력을 넘어서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침체됩니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이유 조약 체결 이후, 부풀어진 산업이 다시 국내 수요에 맞추어 지고, 전시에 특화되었던 산업 체계는 다시 새롭게 전쟁 전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탱크와 전투기를 만들 던 공장은 자동차와 민항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무전기가 만들 던 공장은 라디오를 만드는 공장으로 변모합니다. 돌아온 병사들은 다시 노동자로 편입됩니다. 1919년 부터 1921년까지 전후침체 (post-World War I recession) 로 불리었던 약 2년 간 경기 침체를 겪은 뒤, 미국은 다시 회복합니다. “우렁찬 20년대” (Roaring 20s) 또는 광분의 시대 (Années Folles) 가 막을 열었습니다.
위대한 게츠비. 격동의 20년대를 잘 그려낸 Fitzgerald의 명작이지요.
이 격동의 1920년대는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등장 했던 무시무시했던 신기술은 새로운 상품으로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특수로 벌은 돈을 이런 “신상”에 소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와 라디오입니다. 이 둘은 전후 미국인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상품들이었습니다. 자동차는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전쟁에서만 쓰이던 라디오는 대중 매체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발달은 정유 산업이 전쟁 후에도 그 황금기를 유지하게 해준 공신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물결은 정치, 문화, 예술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1920년 미국 의회는 수정 헌법 제 19조 (the Nineteenth Amendment)를 통과시킵니다. 이게 무엇이냐고요? 바로 여성 참정권입니다. 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는 더 이상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실제 공직에는 여성은 거의 진출하지 못했지만, 법적인 권리를 받았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둡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모습. 푯말에는 "'여성 참정권을 지지할 때이다' 라고 윌슨 대통령이 말한다" 라고 써있습니다.
또, 같은 년도에 미국 의회는 - 상상 하기 어려운 - 수정 헌법 제 18조 (the Eighteenth Amendment), 금주법 (Prohibition)을 통과시킵니다. 이 금주법은 조직 범죄가 꽃 피워지게 하는 원흉이 되었고, 알 카포네의 악명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라디오의 부흥은 재즈 시대 (Jazz Age)을 열었습니다. 1922년 첫 상업 라디오 방송 KDKA가 펜실베니아의 서부 공업도시 피츠버그 (Pittsburgh)에서 문을 연 이후에, 많은 라디오 방송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여지없이 재즈를 틀었습니다. 예술에서는 Art Deco라는 벨기에에서 시작된 풍조가 유행하여, 이것을 따른 당시 세계 최고 마천루인 크라이슬러 빌딩 (Chrysler Building)이 뉴욕 맨하탄에 건축되었습니다.
미국 한 신문의 정치만평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재무성을 상징하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법무부를 상징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사나운 동물은 바로 금주법 단속. 재무성이 “너의 것일세 형제야, 그리고 얼마든지 가지시게” 라고 얘기하고 있지요. 금주법 단속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가히, 격동의 시대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위의 열거한 변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이 격동의 20년도 는, 그러나, 경제적으로 불안한 기반위에 올려져 있던 풍요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안했는가? 먼저 “왜?” 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미국 경제를 다음편에 차근차근 짚어 나가 봅시다.

비행기는 공학의 꽃이고, 공학은 과학의 꽃이며, 과학은 생활의 꽃입니다
clor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