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 (창작 동아리)
자신의 습작 자료를 올리고 의견을 듣거나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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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디 더운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러,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저녁의 끄트머리에 걸린 한 학교의 운동장을 한 남자가 홀로 걷고있었다. 그다지 늦은시간은 아니었으나, 이미 지기시작한 해는 주홍빛의 파편만을 콘크리트의 조각위로 뿌리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위로 그가 꺼내든 액정의 파르스름한 빛이 비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그 액정에 표시되고있는것은 시시하기 이를데없는 잡담에 불과했다. 같은 반의 여자아이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입력하며 시시덕대던 남자는 문득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고개를 핸드폰으로 돌리는 순간,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뜻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핸드폰의 미끈한 몸체를 주머니안으로 집어넣고는 메고있던 크로스백의 끈을 당겼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그가 등지고 있던 본관건물의 중간부분이 터져나간것은 그때였다. 막 얼굴을 내밀기시작한 달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엄청난 밝기의 화염이 오래된 벽돌건물사이에서 그 붉은 혓바닥을 내밀자, 굉음과 함께 주위 건물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버렸다. 남자가 때늦은 하교길을 조금만 더 늦추었더라면, 건물안에서 폭사하거나 날카로운 창날로 변한 유리조각에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운동장이 본관보다 낮은곳에 위치해있는 학교건물의 특성탓에, 그가 엎드려있는곳 까지도 유리조각이 튀어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다 문득 자신의 머리에서 일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곳에 떨어져있는 묵직한 콘크리트조각을 발견하고는 얼어붙었다. 만약 그가 엎드리지 않았더라면, 그 콘크리트조각이 뭉개놓은것은 운동장의 모래가 아니라 그의 머리였을것이다. 그는 두려운마음에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어딘가로 전화를걸고자 하는 마음같은것은 예전에 달아나버린지 오래였다. 그는 그저 무언가를 움켜잡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정도로 놀라있었다. 다음 순간, 건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신관쪽에서 둔탁한 발사음과 함께 발사된 박격포탄이 소름끼치는-마치 귀신이 울부짖는것 같은- 낙하음과 함께 방금 폭발한 본관건물에 내려꽃혔다. 남자는 겁에질려 운동장의 커다란 스탠드 밑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웅크렸다. 시끄러운 엔진음을 내며 운동장으로 들어온 장갑차는 계속해서 본관을 향해 사격을 했고, 발사음이 울려퍼질때마다 남자는 몸을 떨었다.
장갑차의 포탑이 돌아가면서 본관건물에 제압사격을 하는동안, 뒤편의 문을 열고 한 떼의 군인들이 내렸다. 그들은 죄다 얼굴에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를 쓰고있었다. 그리고 겁에질린 남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들이 입고있는 군복은 그가 가끔 보곤 했던 휴가나온 국군의 군복과는 다른 것이었다.
군인들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와 스탠드를 타고넘어 본관으로 진격해들어갔다. 남자가 그늘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남자를 보지 못한채 그대로 지나쳐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장갑차의 사격이 멈추었다. 남자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드는순간 장갑차를 붉은 형체가 덮치는가 싶더니, 장갑차는 곧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해버렸다.
"무...무슨!"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지만, 그 강력한 장갑차를 일격에 격파한것은 그보다 덜한것은 아닐터였다. 게다가, 산발적으로 들려오던 군인들의 총소리역시 멈춘지 오래였다.
"씨팔! 북한인가?"
남자의 머리속에는 단지 도망쳐야한다는 생각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문은 정문이었다. 하지만 저 장갑차가 정문으로 들어왔다면, 그곳역시 안전하지 않을터였다. 생각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인채로 스탠드를 엄폐물삼아 화단까지 달렸다. 낮이라면 화단따위에 숨는것은 바보짓이겠지만, 이런 밤에는 모든 색은 채도를 잃는다. 그는 수위가 정성들여 가꿔온 화단에 몸을 숨기고 부설유치원이 있는 건물쪽으로 달렸다. 다음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낮시간의 운동장이라면 벨소리를 들을수 있는 거리는 짧았겠지만, 불안한 정적만이 무겁게 깔려있는 지금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는 휴대폰을 끄려고 시도했지만, 긴장한 탓으로 손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씨발 제발좀!"
그는 핸드폰이 꺼지지 않자, 그것을 그대로 팽개치고는 내달렸다. 평소 애지중지하던 핸드폰이었지만, 그는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어쩌면 그렇기때문에 더욱 냉철한 판단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핸드폰을 버린지 채 10초도 되지않아 그 자리에는 엄청난 사격이 가해졌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감탄할 새도 없이 건물 뒤편의-급식소 차량이 들어오는 통로-작은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역시 그쪽의 문은 잠겨있었다. 하지만 이런 십자형 담장이라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었다. 그는 튀어나온 틈새에 발끝을 집어넣고 가랑이를 난간에 얹었다. 그 순간, 절망에 찬 비명소리와 함께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그의 몸뚱이를 담장 너머 2차선도로로 내던졌다. 평소같으면 살짝 까진것만으로도 한참을 칭얼대었을 그였지만, 거의 뼈가 드러날만한 창상을 입고도 그는 계속해서 달렸다. 어디로 가고자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달렸다.
'가스배관의 공사부실로 인한 학교건물 폭발, 다행히 사상자는 없어' 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전국의 지면을 뒤덮었다. 사람들이 알고싶어하는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그들의 구미에 맞는 '사실'인가? 정처없이 걷다가 정신이 든 남자가 찾아간 곳은-당연한 일이겠지만-병원이었다. 종이를 자르다가 커터칼에 슬쩍 베인것정도의 부상밖에는 입어보지않은 소년이 허벅다리와 오른쪽 비골이 거의 드러날정도의 중상을 입었음에도, 사고지점으로부터 거의 2킬로미터나 떨어진 병원까지 자기힘으로 걸어온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신이 든 후에 다리에서 올라오는 비명조차 지르기 힘든 고통을 겨우 억누르며 흩어진 정신을 으깨질듯이 부여잡은 남자는 용케 찾아간 종합병원의 접수대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것은 약 이틀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 폭발이 있었을 당시에 팔로 얼굴을 가린 탓에, 옷이 약간 그을린것빼고는-다리 외에-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은 남자의 신원파악은 쉬웠기때문에 병원측에서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가 일어났을적에는 그의 어머니가 와 있었다. 일의 연유를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남자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어차피 믿지도 않으리라.어머니가 가져온 신문의 첫 페이지에는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벌어진 대형 가스사고-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던-에대해서 대서특필이 되어있었고, 그는 '역시'하는 마음으로 신문을 접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장갑차까지 동원될정도의 작전을 가스사고로 묻어둘 정도라면, 그 정도의 대형사건을 은폐할수있는 세력이라면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있는 유일한 외부인인 그가 입을 벌리는 순간 마치 벌레를 죽이듯이 찍어죽일수 있다는것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입을 다물고있는다해도 별다를것 없을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장갑차를 일격에 격파할정도의 중화기를 동원할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그것도 블랙 미션으로- 고삐리 하나쯤 죽이는것은 날파리잡듯 쉬운일일 터였다. 단순히 그가 생각해도 방법은 많았다.
어머니에게는 귀가중에 차에 치인정도로만 말해두었다. 기자회견따위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인생을 깨달아버린 어린아이같은 씁쓸한 마음으로 병상에서 잠을 청했다.
나만 닥치고 있는다면. 아무일없을것이다. 나만 닥치고 있는다면
이런걸 전문용어로 '지레짐작'이라고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