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뭔가 있어보이는 문자이지만 별거 아닙니다. 어떤 존재나 실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이루는 더 기본적인 단위나 부분이 어떠한 특성이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것이 모여서 이루는 물체나 실체 또한 그것과 비슷하거나 실질적으로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
말로 하니까 어렵군요. 쉽게 말해서 강철의 분자가 어떠한 특성을 갖고 있다면 강철 분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강철 의자도 강철 분자가 갖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여기까진 매우 당연하게 들리죠. 이것이 가장 유명한 사례로 쓰인 것 중 하나가 도킨스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일겁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는 환원주의에 기초해 있는 듯 합니다. 예를들어 유전자는 이러한 성질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그것이 이루는 더 큰 실체(인간을 포함한 동물이라던가 식물이라던가 등등)의 행동양식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를 찾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대부분의 과학 이론이나 가설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기본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이론의 가장 큰 전제조건 하나가 이거겠죠. 모든 조건이 똑같은 상황에서 모든 조건이 똑같은 일(혹은 작업, 혹은 실험. 완벽하진 않더라도 오차범위 내에서)을 하게 되면 그 결과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뭐....이 이론도 알쏭달쏭한 양자물리학 세계가 열린 뒤부터는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머릿속으로 돌려보면 얼추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럴듯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환원주의 또한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장 원자와 분자만 하더라도 재료는 갖지만 그걸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성질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까.
사족.
도킨스의 주장의 '자연스러움' 자체는 기존에 알려져있는 전통적 인륜에 완전히 반하는 사례가 꽤 많죠. 그의 저서를 보다가 보면 그런 의도가 자주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이긴 한데 이게 인륜적으로 옳지 않으니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주로 이거죠.
즉. '자연스러운 것은' 이것이긴 하지만 '자연스러움' 자체가 '옳은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만들어진 신'에서도 유신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자신이 우주의 대의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걸 부정합니다. 하지만 결론에 가서는 '인간은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는 걸로 끝맺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결국 한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흠.
어째 말이 막 꼬이는데 여튼간 그도 자신이 벗어나고자 하는 '비감성적 의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달까? 뭐 그렇네요.
사족2.
일시적 불가지론자인 제가 보기에는 무신론 또한 일종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는 종교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족3.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 볼 만한 문제 같습니다. 대체 뭐가 '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밝힐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뒤로 제쳐 두고서라도 말이죠.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절대라고 부를만한 법칙이 얼마나 될까요? 절대의 법칙처럼 보이는 몇가지 자연 법칙도 다른차원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이러이러한 조건에서는 이렇게 된다라는 전제가 붙어야만 좀 더 절대에 가까운 이론이 되겠죠.
그리고 선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를 정의 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면 그건 인간의 시각이지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자연은 선과 악을 떠나 그냥 존재하는 것일 뿐이고 그것이 인간(나)에게 이롭냐 해롭냐를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구분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인간의 시각을 벗어나 것이 불가능 할거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자연스러운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좋게든 나쁘게든 판단을 내리겠지요.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서의 주장은 환원론적인 것일까요? 도킨슨은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에 유전자의 이익 쪽으로 생물이 행동하는 '본능'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강철 분자와 강철 의자의 예는 도킨슨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저는 도킨스의 말을 생물의 행동양식의 '근본적 목적'에 유전자적 명령체계가 있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님의 덧글에서 '유전자의 이익쪽으로 생물이 행동하는 본능이 있다는 점' 이란 부분이 있는데 결국 이게 유전자적 성질 = 개체적 성질. 이란 논지를 깔고 있는게 아니냐....라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님이 이 주장으로 환원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주장하시려면 유전자의 이익을 나타내는 행동양식과 개체의 이익이 발생하는 행동양식이 충돌을 빚는 점에 대해 무게를 실어서 주장하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쨌거나 이 덧글의 느낌으로 본다면 '본능'이라는 것은 어쨌거나 '좀 더 근원적인' 행동양식이고 결국 객체의 행동이 유전자의 이익을 위한 명령코드를 따르고 있다는 것에 더 가까운 주장으로 보이니까 말입니다.
'근본적 목적'이라는 말은 진화를 이야기하다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킨슨은 유전자와 개체의 이익이 불일치하는 경우로서 톰슨가젤의 높이뛰기나, 공격하면 죽는 꿀벌, 일개미, 그리고 1:1로 동물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성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틀릴 수 있습니다. ^^;)
도킨슨은 자신의 주장이 기존의 '그룹 선택설'에 대한 반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룹 선택설은 진화의 손익은 종의 단위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하는 논리입니다.
근본적 목적이라는 말을 쓴것은 진화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생명체의 생존목적이라는 뜻으로 쓴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진화의 목적이 곧 유전자 보전이라는 목적 안에 포함된다면 전자로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니겠지만요.)
그리고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이 일치되지 않는 예시를 들기는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도킨스가 이런 예시를 든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이타적'인 행위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이기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로서 쓴 것 같은 뉘앙스가 좀 들던데요.
만약에 그가 이러한 행위가 '이타적 유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얘기한다면 이것은 그가 반론하고자 하는 그룹 선택설과 다소 일치되는 점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니 아마 그런 의미로서 그런 예시가 쓰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원론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기적 유전자가 그룹 선택설에 대한 반론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환원론이란 기반하에 논리를 전개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룹 선택설은 '종의 이익'을 위해서 유전자에 '이타적 유전자'라는 것이 존재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도킨스의 말은 그런 일부 이타적 행위가 결국에는 '개체의 이익 혹은 더 근본적으로 볼 때 유전자 보전의 이유라는 더 작은 단위로서의 이익'이 다른 형태의 행동양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종의 이익이 아니라 개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것이 때로는 마치 종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거죠. 그의 말은 결국 그것은 '이기적 행동'의 다른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구요.
결국 그룹 선택설을 말하건 객체 선택설을 주장하건 그 근본에는 '유전자 보전'이라는 코드가 '객체의 행동양식'에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에는 차이점이 없는 거 같습니다. 단지 그 '범위'가 객체이냐 그룹이냐, 유전자가 어디까지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견차이일 뿐이지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만.
- 네 그렇군요. 그래도 저의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2. 장기적으로 볼 때 이기적이 되는 뉘앙스, 이타적 유전자의 가능성.
- 명백하게 틀립니다. 다시 읽어보세요.
3. 환원론과 그룹 선택설
- 아무 상관 없습니다. 환원론이 아닌 이유는 그냥 환원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종의 이익과 개체의 이익.
- 도킨슨의 관점은, 종의 이익이나 개체의 이익이 아닌 유전자의 이익입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인간적인 의미로만 한정하여 이해하시고 계시군요. 안타깝네요. :-(
5. 그룹 선택설과 개체 선택설.
- 미안합니다. 책을 다시 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주로 도킨슨을 비판하는 의견은, 손익을 따질 수 있는 주체로서 유전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그 이외의 비판에 대해서는 고려해볼 여지는 적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저도 생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스티븐 J 굴드가 그런 식으로 도킨슨을 비판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킨슨도 굴드의 '단속평형설'을 기존의 네오 다위니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럴 듯 하게 포장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지요.
그리고 도킨슨의 시각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라면, 저는 그것이 부도덕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치 중립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요. 관찰을 할 때에는 가능한 모든 편견을 ( 인간적, 도덕적 편견을 포함하여) 버린 상태에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론이나 학설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상을 얼마나 매끄럽고 단순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가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자의 이기심을(사실 분자는 마음이 없으니 그것을 이기심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사악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또한 어떤 동물(저는 영리한 동물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이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것도 저는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한 도덕적 편견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다시 그 책을 보신다면, 그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우울한 메시지가 아니라는 점을 어쩌면 잊지마 님께서도 동의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긴 덧글 달았습니다.
사족 부분을 제외한 것에서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없었던거 같습니다만...-_-a
사족에서 얘기한 것도 그의 이론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라는 논지를 표현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 얘기는 '도킨스 자신은 인간적 도덕적 편견에 완전히 벗어난 시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려는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지만 그의 저서 대부분을 보면 결국에는 도덕적 잣대를 대고 있다.'는 뜻이었죠.
예를들어 그의 저서에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한 뒤 귀결부에 가서는 신이 없어도 인간은 도덕적으로 고귀해질 수 있다. 라고 하지요. 또는 유전자의 기본 성향은 이러하다. 그러므로 인간 또한 이타적인 성향보다는 이기적인 성향이 좀 더 배우기 쉽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옳다 그르다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라고 하지만 누차 강조하기를 인간은 '멀리 봤을 대의 이기적 이득'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유전자 단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그 근거로서 그는 몇 가지 시뮬레이션 모델을 제심함으로서 '장기적 안목에서의 이기적 이익'은 '이타적 행위'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칩니다.)
이정도라면 건조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이사람이 과연 무신론자가 맞는지가 의심이 될 정도로 인본주의적 혹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시각이죠.(저는 종종 도킨스가 새로운 종류의 뉴웨이브 종교를 창시하려는 시도를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조차 듭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우울한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을겁니다.
제가 궁금한건 과연 그런 논리로 전개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본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는지가 궁금했던 겁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볼만한 흥미로운 주제겠지요. (사족 3번에 달아듯이 말입니다)
일단 도킨슨의 의견이 환원론이 아니라는 것에는 저도 동의 하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가 원자를 이해함으로써 분자의 성질을 좀더 잘알게 되듯이, 유전자와 유전자가 담고 있는 정보를 알게 될 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물질이 집합을 이루어 전혀 다른 성질, 다른 기능을 가지는 예는 매우 흔하다고 할 것입니다.
환원론이 때로는 원리를 통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한 환원론의 도구적인 가치는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모든 논리적인 명제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의 절대성을 의심하지 않는 한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이라구요.
그렇다고 절대적이지 않은 명제가 가치가 없다고 누구도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킨슨의 이기적인 유전자는 우리에게 '사회진화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의 열쇠와도 같은 책입니다. 그 문을 열고 나서 맞이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온전히 우리가 사유하고 정리해야될 사항이지요.
선인들은 세상이 열개의 열쇠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열개의 열쇠를 찾았지만 열개의 열쇠로 열개의 방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백개의 열쇠가 필요한 문들이 가로 막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문안이 어떻게 생겼다 구경만 할 뿐 새로운 문의 열쇠를 찾아 나서지 않기 마련입니다만...
어떤 변화를 설명하기도 곤란하다는 것이고요.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말이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유지의 정당화 논리가 될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 이러해서 이런일이 발생한 것이니까 이런 현상은 당연한것이다.
부자는 근면해서 그렇게 된거고 거지는 게을러서 그런것이니까 열심히 일해라.
하지만 현실은 시스템적인 문제인거지 결코 거지가 게으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게을러서 돈을 못버는것도 맞을수 있겠지만 근면한데도 가난뱅이가 되는것은 설명할수 없죠.
그것은 시스템적인 문제일수도 있는데 환원론은 그런 접근 방식을 논리상으로 취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개별 사례에서 이론을 발생시켜야 하니까요..
같은 논리로 따져볼때 왜 전쟁이 일어 나는가. 전쟁은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가를 개별 전쟁별로 원인을 분석하면
결국 환원론적으로 해당 전쟁에 대해서 원인에 대해서 설명할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는데 왜 전쟁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근본원인
해석은 불가능하죠. 구조적인 면에서 어떤 현상의 발생원인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 개개의 건에대해서만 설명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문제랄수 있겠죠.
결국 환원론은 전쟁 방지 측면에서 동일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전쟁에 대한 예방책은 만드룻 있을가능성은
있지만 전 지구규모로 발생하는 다양한 전쟁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예방책은 설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물론 환원론이 무조건 나쁘다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분명 환원론적인 설명도 어떤 현상의
규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수도 있습니다.
전체에서 보는거랑 개별적으로 볼때 분명 다른 시야가 존재할테니까요.